- 사회복무요원 이야기(3) - 대구달서구노인복지센터 백태욱 씨(27)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에 가장 큰 영향은 가족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매주 저를 데려가면서 하신 말씀이 가정이 편안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밖에서도 잘한다고 어릴 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셨고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제가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겨난 것 같습니다.
구미시 구암동주민센터에서 2009년 7월 여름부터 시작된 사회복무요원 복무, 처음에는 생소하고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것들이 잘 이래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들이 싫었지만 그래도 바꿀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선배들이 다 솔선수범하며 성실히 복무하는 모습을 보고는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장래 직업을 두고도 국제무역사와 사회복지사를 고민하고 있던 중 이었는데 사회복무를 하면서 저의 적성을 찾아가게 되는 과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무교육센터에서 학습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해 잘 모를 때에는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무작정 착하고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저의 무지함을 직무교육을 통해 바로 잡혔습니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었고 장애인, 수급자, 노인 등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보충하여 주었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도 알게 되어 현장에서 업무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사회복무는 결국 저로 하여금 사회복지사로 진로를 설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역 독거어르신들 방문확인은 마치 할머니댁을 찾는 기분이었고, 때때로 엄청난 양의 자료를 전산입력하면서도 저의 손을 통해 취약계층 아동들의 보육료가 정확하고 요긴하게 지원된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짜릿한 보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는 행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된 사회복무요원
“사회복무요원임에 당당하세요”
지금 저는 직장인 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 담당자로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들에게 힘들고 지치면 휴가를 사용해 여행도 가고 등산도 가보라고 권합니다.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지쳐 가다보면 복무는 점점 길게 느껴지고 힘들어지기 마련입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도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복무생활의 위기를 극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복무요원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감정을 가졌으며 동료입니다.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업무를 나누어 역할을 담당케 하는 것입니다. 과중한 업무나 무리하고 강압적인 지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사회복무요원들을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과 사회복지 현장의 직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직원에 준하는 업무와 그에 준하는 인격적 대우는 필수입니다. 바로 ‘준직원’ 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을 하면서 사회복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후 복학하자마자 사회복지를 복수전공으로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타전공생이 사회복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만큼 더 열심히 알려고 하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고민도 나누고 진로에 대해 걱정을 하며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과 여러 가지 준비를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 봉사동아리 ‘행복한 동행’ 활동도 매번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가정복지회 달서구노인복지센터에 사회복지사 직원으로 있습니다.
저는 항상 우리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복무요원’ 이란 이름에 당당해지세요. 무엇이든 본인이 하기 나름이고 만들어가기 나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