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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이시덕 기자
  • 등록 2007-01-30 22: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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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빅딜이 남긴 교훈
수단과 방법이 다르더라도 목적만 성취하면 된다는 취지로 흔히 인용되는 어귀다. 조금 확대 해석하면, 목적 달성이 방법과 과정상의 합법성과 정당성에 우선할 수 있다는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 압축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국민의 ‘빨리 빨리’ 정서를 대변했던 표현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시대에도 과연 통할 수 있을까?

 
필자는 국민의 정부시절, 청와대와 재정경제부를 오가며 기업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된 ‘빅딜’(맞교환)을 의사결정과정의 근접거리에서 지켜본 바 있다. 무산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 사업교환을 제외하고 빅딜은 과잉시설이 존재하고 있는 업종 내부간에서 이루어진 인수합병이다. 지금의 하이닉스로 불리고 있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간 합병, 현대-한진-대우간 철도차량부분 합병, 삼성-현대간 석유화학부문 합병 시도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과잉시설 정리의 딜레마

인수합병(M&A)은 어느 업종이건 과잉시설을 정리하기 위한 해법이다. 시장에서 공급자가 여럿 존재하면, 비록 업종 전체로 과잉시설을 정리하는 것이 해당 제품가격을 높여 업계 전체로 이득이 된다는 점을 뻔히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 이치는 자명하다. 어느 한 공급업자가 스스로 시설을 정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 이득은 업계 전체로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자기 살을 먼저 도려내 과잉시설 정리에 나설 수 있겠는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적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는 시장의 해법은 인수합병이다. 시장의 강자가 인수합병을 통해 공급자 수를 줄이고 자신의 과잉시설을 정리하면 그 이득은 고스란히 자신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약 10여 년 전 자동차업계가 세계적인 과잉시설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을 당시, 크라이슬러의 볼보 인수, 르노의 닛산 인수 등 M&A 광풍이 불었던 점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빅딜도 시장의 해법을 원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과 과정이 달랐다. 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은 당사자간 인수가격, 방식 및 조건 등 구체적인 사안이 완전 합의된 상태에서 세상에 알려지고 진행되지만, 빅딜의 경우에는 당사자간 인수합병 원칙에만 합의하고 세부사안은 사후에 정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사자간 협의를 진행시키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른바 ‘선합병, 후정산’ 방식이다. 거래의 모든 사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자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절차적으로 무리가 있더라도 이 방식이 우리의 ‘빨리 빨리’ 정서에 더욱 부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더욱이 당시는 과잉시설이 빨리 정리되지 않으면, 해당기업의 사활은 물론 더 큰 금융부실을 유발해 국가경제도 존폐일로에 갈 수 있었던 외환위기 시절이 아니었던가.


존 내쉬의 게임이론

위 방식이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음은 영화 '뷰티플마인드(Beautiful Mind)'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 내쉬가 창시한 게임이론에서도 입증된다. 즉 두 죄수가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해법이지만, 제3자가 ‘믿지 않으면 안 될 위협(credible threat)’을 통해 두 죄수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도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시절 많은 부실기업의 정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빅딜 시도’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철도차량, 항공기의 경우 통합법인이 출범하였지만, 당초 기대에 비해서는 시간도 많이 걸렸고 그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다. 하이닉스의 경우, LG전자의 LG측 지분을 인수하는데 당시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었던 비용보다 훨씬 많은 2조8000억원을 지불하였다. 이러한 비용 지불이 결과적으로 하이닉스의 태생적 멍에(?)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아예 합병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필자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민주화시대에는 과정이 달라지면 게임규칙이 달라져, 참여하는 주체들의 행동양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으로 본다. 게임이론을 원용하면, 권위주의 시절에는 통할 수 있었던 정부의 ‘credible threat’이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시절에는 더 이상 게임 참여자 모두를 기속하는 기재(mechanism)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과 합법성이 최선

오히려 빅딜과정에서 정부의 존재는 빅딜 참여기업들 간 상대방의 무조건적 양보를 얻어내는 방편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매각조건을 협의하는 ‘후정산’ 과정에서 빅딜 참여기업들은 서로 상대방 기업이 정부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방적 판단아래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만을 고집하였고, 이는 ‘선합병’의 기본취지를 퇴색시키거나 아예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절차가 달라짐에 따라 아예 애초의 목적도 달성되지 못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빅딜의 예를 들었지만, 비단 이러한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다. 노사간에 정부를 볼모(?)로 한 극한 대립, 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질 처리시설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 등등…. 빅딜을 통한 최고의 교훈은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합법성이 목적달성을 위한 최선이자 유일한 방안임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래서 우리사회에서도 이제 ‘모로 간다면 서울은 갈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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