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물도 실내 일부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은 늘 화려하다. 반짝이는 매장과 시끄러운 음악,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조용히 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다물도’. 이름부터 낯설고 묘한 울림이 있는 곳이었다. 바다를 품은 식당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나는 단순히 홍어를 먹으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날은 무언가 깊고, 조용하며, 오래 머무는 맛을 찾고 싶었다.
문을 열자 작은 바다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흑산도에서 올라온 재료들, 낯선 간국과 조림의 향기, 그리고 조용한 웃음을 가진 직원들의 인사.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한 ‘맛집’이 아니라 ‘기억을 빚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 홍어삼합 /사진=다물도
▲ 다물도가 자랑하는 싱싱한 문어 숙회 / 사진=다물도홍어는 무척 조용했다. 톡 쏘는 향이 분명 있었지만, 그것은 큰 소리 대신 잔잔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숙성회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시간도 잠시 멈춘 듯했다. 차가운 회의 결이 입천장을 지나며 살짝 녹고, 숙성의 깊은 향이 코끝으로 퍼진다. 연어, 문어, 멍게와 함께 조용히 앉아 있던 홍어는, 단연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건 ‘홍어 애탕’. 따뜻한 국물이 담긴 뚝배기 하나가 테이블에 내려앉자, 방금 전까지의 숙성이 갑자기 활기를 얻은 듯했다. 일반적인 홍어애탕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은 매콤하면서도 구수했고, 어딘가 모르게 다시 입맛을 끌어당겼다. 소문처럼, 이 집만의 조리법이 있나 보다. 그 쏘는 감칠맛이 너무도 명료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국물 한 숟갈을 여러 번 반복했다.
▲ 쏨뱅이 탕수 / 사진=다물도
▲ 산낙지 탕탕이/사진=다물도다물도에는 익숙하지 않은 메뉴가 많았다. 우럭간국, 장어간국, 고등어 간국. 이름만 들어도 요즘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음식이다. 특히 우럭간국은 그 깊이가 놀라웠다. 반건조 우럭이 품은 농도 짙은 육향, 뽀얗고 정직한 국물, 말하지 않아도 배려를 담고 있는 듯한 온기. 그 국물 한 그릇에 술 한 잔이 간절했지만, 그저 마음속으로만 잔을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물도의 조림은 ‘시간의 맛’이다. 흑산도 황석어 간장조림, 반건조 장어 간장조림, 고등어 된장조림. 밥을 부르기보다는 기억을 깨우는 맛들이었다. 특히 황석어 조림은 간장의 짭조름함이 아니라, 물러난 살점과 간 사이의 미묘한 균형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자극이 없는데도 손이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정직해서다.
▲ 황석어 간장조림 / 사진=다물도식당을 나서는 길, 내 입에서는 “참 고마운 식사였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홍어 맛집일 테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낯선 간국이 주는 향토의 위로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다물도’는, 한 끼를 통해 바다를 만지고, 사람을 느끼고, 시간을 곱씹게 만든 자리였다.
서울 도심의 지하 1층. 그곳에 흑산도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오늘 나에게 아주 조용히 말을 건넸다. “괜찮지? 천천히 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