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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는 '독소조항' 아닌 '공평조항'
  • 류상호 기자
  • 등록 2007-04-28 2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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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는 약(藥)인가 독(毒)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단체는 ISD는 독소조항이라며 이 제도가 포함된 FTA는 해서는 안되며 미국측이 끝까지 요구하면 FTA를 접어야 할 딜-브레이커(협상결렬 요인)라고 지목해 왔다.

지난 2일 한미FTA 협상이 ‘산고’ 끝에 타결된 이후에도 ISD의 위헌성, 사법주권 침해, 공공정책 훼손 등을 이유로 들며 FTA 협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은 ISD가 ‘약이냐 독이냐’ 식으로 딱 잘라 단정질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차라리 ‘양날의 칼날’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반대단체의 주장은 양날의 칼날 중 우리측을 향해 있는 칼날 만보고 미측을 향한 칼날은 보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데서 나온 편협한 사고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어떤 국가와도 FTA나 투자보장협정(BIT)를 맺지 않고 외국인투자를 끌어드릴 필요가 없다면 몰라도 우리 경제가 수출과 교역, 외국인투자에 의존적인 한 ISD를 부인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고는 지적이다.

한미FTA 투자챕터의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은 FTA를 맺은 양국이 상대방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각종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분쟁이 발생했을 때 투자자가 국내 법원 또는 국제중재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이다.
 
◆ ISD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도가 아니다

“ISD가 우리 입장에서 생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영원히 이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이재민 한양대 국제법 교수)

“ISD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도가 아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인정하는 제도이다.”(강병근 한림대 국제법 교수)

한미FTA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ISD는 항상 논란의 제1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익숙지 않은 제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병근 한림대 교수는 “우리가 국제중재라는 방식에 대해 잘 모르니까 들어나는 문제”라며 “허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여러 이유를 들어 우려를 제기하는데 이미 우리가 알듯이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ISD를 ‘독소조항’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강 교수는 “독소조항이 아니라 공평조항이라고 봐야 한다”며 “어느 나라 투자자든 동일하게 보호하자는 것이 1990년대부터 모든 협정에 언급되고 있고 학문적으로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재민 한양대 교수는 “세계 61개국이 투자보장협정(BIT)나 FTA 협정을 통해 ISD를 도입하고 있는데 세계 11위 교역국인 우리가 언제까지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있겠느냐”며 “ISD는 1962년부터 보편화된 제도이고 제도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률전문가들은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국내법에 의해서도 국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몰수하는 경우 보상규정이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맺은 BIT나 FTA에 모두 ISD를 도입했는데 미국과의 FTA만 문제 삼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국제중재협회 이마뉴엘 가이야르 회장은 “분쟁해결절차를 두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국 투자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도 갖는 것을 의미한다”며 “평상시에는 상호적 관계에 있지만 분쟁이 일어날 때는 일방적 관계로 나타나 불리해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 협상결과 나쁘지 않다

법률전문가들은 국제중재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간접수용에 대한 정의를 더 명확히 하고 범위를 제한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법무법인 율촌의 정영진 변호사는 “한미FTA 투자챕터에는 별도의 부속서를 둬 수용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며 “특히 정부조치 자체만으로는 간접수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의했는데 이는 이전의 어떤 BIT나 FTA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미국이 만든 2004 모델BIT가 담고 있는 간접수용의 예외조항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요구로 부동산가격안정화, 조세정책을 간접수용 대상이 아님을 명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중재 과정에서 사용되는 공식언어도 영어, 한국어 모두 가능하며 중재기관에 제출하는 증빙자료, 증언 또한 그대로 한국어를 인정키로 한 것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됐다. 특히 중재절차의 투명성을 위해 모든 제출된 문서는 공개토록 했다.

강병근 교수는 “이번 한미FTA 협상은 전세계적으로 봐도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 높은 것이었다”면서 “특히 중재절차에서 한국말을 쓰도록 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말을 쓸 경우 국제중재인들이 한국 정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증거자료 등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의 오역 등의 문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 위헌, 사법주권 침해 우려 과장됐다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 수용과 이에 따른 보상, 그리고 ISD에 의한 분쟁해결이 국내 헌법과 상충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조약으로 외국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은 법률보상주의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

강병근 교수는 “고도의 경제적, 정치적 판단에 따라 도출된 FTA 결과물을 국내법으로 판단한다면 어떤 형태의 FTA도 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며 “위헌 여부를 제기한다면 한미FTA뿐만 아니라 우리가 체결하는 모든 국제협정문이 다 위헌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주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서는 국제조약을 맺는 한 자국의 사법권 행사를 일정정도 제한받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ISD 절차가 국내 법원이 아닌 국제중재기관에서 이뤄진다고 해서 우리 사법권 행사가 제약을 받는다는 주장도 국제중재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생기는 오해라는 지적이다.

이재민 교수는 “모든 국제조약이 일정부분 사법주권에 제한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는 우리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라며 “양날의 칼을 봐야지 우리쪽으로 향한 칼날만 보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 공공정책 제소가능성 있지만 투자자 승소는 희박

우리 정부는 한미FTA협상에서 ISD의 제소사유 중 간접수용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기존의 FTA나 BIT보다 더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한 제소 남발의 우려를 최소화시켰다.

특히 한미FTA에서는 공공정책은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해 공공정책이 훼손될 우려를 제거했다.

‘간접수용’ 제외기준을 보면 공중보건, 안전, 환경, 부동산가격안정화 등과 같은 공공복리 목적의 비차별적 조치는 ‘드문 경우’가 아닌 한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또 ‘조세’에 대해서도 별도의 부속서를 둬 “과세는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규정했다.

‘간접수용’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이재민 교수는 “이 개념은 수십년간 국제사회에서 인정돼 온 것으로 우리나라만 이를 부인할 수 없다”면서 “다만 그동안 간접수용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제소 남발의 우려가 컸던 것은 사실이고 이번 한미FTA에서 이에 대한 정의를 더욱 명확히 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공정책에 대한 제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강병근 교수는 “투자자들은 정부정책이 간접수용에 해당한다며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다”며 “그러나 정부정책이 투명하고 차별적이지 않는 한 중재기관에서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 한국을 제소하려면 투자자도 문 닫을 각오해야

한미FTA 반대단체에서는 투자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제소할 가능성이 있어 주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영진 변호사는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며 “그러나 한미FTA 체결 이후 지나치게 투자분쟁이 많아 한국 정부가 제기능을 못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병근 교수는 “미국투자자들이 ISD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이나 기업신뢰도 추락 등을 감안한다면 문 닫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추측했다.

이재민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국가간 소송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개인투자가 제소하는 것은 그 이유가 정말 확실하거나 앞으로 거래를 하지 않을 생각이면 모를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전문가들은 그러나 국경을 넘는 투자가 계속 늘어나고 이에 따라 투자분쟁과 제소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행정기관 스스로 국제중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우수한 국제법률 전문가를 채용해 정부정책에 대해 사전에 법률적 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투자분쟁 전문가를 집중 양성하고 중재사례를 심층 분석해 투자분쟁 소지를 미리 방지하고 분쟁절차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위해 정부법무공단 내에 전담기구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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