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종목 중의 하나인 보치아 경기는 양 선수가 하얀 표적 구를 돌아가면서 던지고 각 빨간 공 여섯 개, 파란 공 여섯 개씩을 경기장 안으로 굴려 보내 표적구에 가장 가까운 공들 중 상대방 공보다 가까이한 공들에 대하여 1점씩이 주어지는 경기로서, 뇌병변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전용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당구와 볼링과 컬링경기의 부분 부분을 가져와 합쳐놓은 것 같은 이 보치아 경기를 하다보면 어릴 적 구슬치기의 아련한 추억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필자에게 수습이 끝난 직후의 첫 업무분장이 장애인 이용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보치아 교실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업무였다.
첫 업무가 주어진 만큼 나름으로는 보치아 경기에 대해 알고자 대한보치아연맹 사이트와 각 시,도 단위 연맹 사이트를 뒤져가며 생소했던 보치아 경기에 대한 지식을 섭렵했으며, 그저 이용프로그램의 담당자일 뿐이었지만 실제 보치아를 진행하는 뇌병변 장애인들의 어려운 심정을 알고자 했었고, 이용자 중심의 프로그램이 되게끔 하기위해 휠체어를 대신한 의자에 앉아 그들과 경기도 같이 하기도 했었다.
그들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보치아 지도방법을 스크랩 해 담당자에게 건네주는 등 일반인들보다 더 큰 열정을 보였으며, 생각의 고저는 일반인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열정과 미래에 대한 사고가 일반인들을 능가할 정도였고, 부부로 지내는 이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바로 보는 따뜻한 눈길에서 그들만의 진정하고 진한 사랑이 무한히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과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보치아의 정상을 행해 등정하던 중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던바 “김 선생님 술 좋아하세요? 저희들과 술 한 잔 해요.” 순간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과 온몸에 전율이 지나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음은 전혀 상상 밖의 현실에 맞닥뜨렸기 때문이었으리라.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이동과 음식물 섭취조차 힘든 그들의 삶에 느닷없이 술 이라니? 비록 신체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장애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감에 내심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수를 보내고 있었고, 그들의 정상적이지 못한 삶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술 괜찮겠어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가끔 집에서도 즐겨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드디어 D-day가 잡히고 그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조금 늦게 약속장소에 들어선 필자가 놀라움을 뒤로 하고 곧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용자분들은 흴체어에 앉은 채 물 잔에 소주를 부어 빨대로 음주를 하고 있었으며, 타 프로그램 담당 선생님들이 쌈을 싸서 안주 수발(?)을 들고 있는 광경은 술 좋아하는 필자가 이 세상에서 본 술자리 전경 중 가장 아름다운 술자리 전경이었다.
더치페이로 술값을 치르고 나와서 2차 노래방을 가자는 말에 필자는 또 한 번 놀라움과 상식의 틀을 깨지만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는 노래방건에 대해 필자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부끄럽기까지 했다.
‘왜 일반인들은 되고 장애인들은 안 되는가?’를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네들이 장애인이어서?’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기 때문이리라.
기분 좋게 노래 몇 곡씩을 부르고 헤어진 그날의 술자리는 필자에게 있어 그 어떤 술자리보다 아름답게 다가왔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자리였음을 자각하게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후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을 위하는 사회전반 모든 시설의 높은 턱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을 향한 턱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그들을 보듬어 품어 안을 수 있고, 사회의 턱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업무가 바뀌어 보치아 교실을 담당하지 않아 그 같은 술자리가 한 번 더 있게 될는지는 의문이지만 필자에게 보치아는 평생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스포츠로 영원히 각인되어 그날의 아름다운 술좌석과 더불어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미안들 해요. 그날 집까지 못 바래주고 끝까지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보내 놓고도 계속 신경이 쓰였답니다. 그리고 두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랑 영원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