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강제병합기념훈장을 내동댕이친 명암 이태일 자료 3,093점 기탁...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은 지난 12월 29일 명암明庵 이태일(李泰一, 1860~1944) 선생 후손 이철기씨(대구 거주)로부터 한국학 연구자료 3,093점을 기탁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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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탁 받은 자료들은 선생의 문집과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소장품으로 고서 972책, 고문서 2,067점, 서화 54점에 이른다.
기탁된 자료 가운데 『명암집明庵集』·『정학통록正學通錄』· 『태평책太平策』· 『대학회의大學會疑』·『홍범정오洪範正誤』·『태극해太極解』등은 이태일의 저술이며,『용산답문록龍山答問錄』,『언행록言行錄』등은 문인들과 대화를 수록한 것이다. ‘태평책’은 유교의 연원을 밝힌 한글가사이다.
이태일은 한말 비운의 시대 유가적 의리와 자주의식을 투철히 지니고 살다간 성리학의 대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의병장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선 서산 김흥락, 향산 이만도, 척암 김도화 등과 긴밀하게 교류하였다. 그는 평소 “군자의 출처는 의에 합당한 때를 맞추어 이루어질 뿐이다. 다만 물을 마시며 경전을 연구하고 선현을 계승하여 후인을 기르는 것이 나의 사업”이라고 하였다. 위정척사와 항일의식은 그의 일관된 신념이었다.
1913년 일제가 선생에게 ‘한일강제병합기념훈장’을 전하자 크게 분노하면서 거절하였다. 일본 경찰은 칼을 들이대면서 훈장을 받지 않으면 목을 베어 천황에게 바치겠다고 위협하자 이태일은 ‘나의 목이 베일지언정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훈장을 마당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의 당당한 위엄에 일본 경찰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육산가六山歌’를 지어 훈장을 거부하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육산가는 절의의 상징인 여섯 선비의 고고한 기개를 본받겠다는 내용이다. “굶으면 서산西山을 본받겠고, 먹으면 첩산疊山을 본받으리. 숨어서는 우산盂山을 본받겠고, 피하면 비산鼻山을 본받으리. 살아서는 냉산冷山을 본받고, 죽으면 문산文山을 본받으리. 만나는 데로 육산六山을 본받겠으니, 구릉도 가히 산을 배우리라.”고 읊었다.
이후 이태일은 죽음까지 불사한다는 서사문誓死文을 지어서 민족의 위기를 자신의 생명과 바꾸고자 하는 유림의 의리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풍운의 시대에 강학 활동과 저술에 전념하면서 오로지 학문과 나라 사랑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번 기탁으로 국내연구기관 최초로 631개의 문중에서 기탁된 305,961점을 소장하게 되었다.
특히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에 선생의 자료를 기탁 받게 됨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명암선생의 드높은 항일운동정신을 고취하고 보급하기 위해 별도의 자료집 발간을 준비 중에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고전적 중심의 수집업무를 좀 더 다양화하여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근현대 자료 수집에도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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