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추상미술전'은 그동안 영남지역의 열악한 문화환경으로 영남의 현대미술을 일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가 없었던 상황에서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전시회이며, 영남미술사측에서는 큰 수확이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이다.
영남지역은 지리가 아름답고, 인심이 순후하고 전통적으로 학문을 좋아해 예로부터 세인들이 영남을 인재의 고장이라 불러 왔다. 또한 신라의 화랑도 정신은 오랫동안 영남인의 중심사상이 되고 행동의 근거가 되어 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길재(吉再)·이황(李滉) 등 유교의 대학자가 나오게 되자 유교와 영합(迎合)하면서 그 인심과 기질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이 뿌리 깊은 정신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영남지역에 많은 학자들이 배출됨에 따라서 학문과 더불어 고아한 취미가 숭상되어 그들이 여기(餘技)로서 그리는 그림은 한국현대미술문화의 근간이 되었으며, 서울 ․ 평양과 더불어 근대미술사에서 중심 무대로서의 배경과 함께 많은 거목들이 배출된 사건들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볼 수 있다.
청소년기는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재료이자 영감의 원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어떤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는가에 따라서 작가의 예술적 미감과, 예술관이 형성 되어 지기 때문이다.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선각자로서의 위치를 얻고 있는 남관, 유영국, 손동진, 주경, 장석수, 정점식은 한국추상미술계의 거목들이다.
이들은 고향에서 감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화가로서의 기본기를 익혔고, 이후 자신의 예술관을 성장시키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서구미술문화를 접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들은 귀국 후 영남지역에 직․간접적으로 활동하며, 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남관, 손동진 작가는 또다시 파리로 활동무대를 옮겨 한국의 추상미술을 서구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남관은 역사의식의 반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경지를 일구었고, 손동진은 파리에서 우리의 전통에 대한 관심과 고전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고향에서 만들어진 자아의식은 작가의 예술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전시를 영남출신이란 단일한 점을 염두에 둔 것도 작가마다 뿌리 깊은 감성에는 고향의 역사성과 문화환경이 작품마다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양미술 도입은 서양과의 직접적인 루트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하는 중간 매개로 이루어졌다. 영남을 빛낸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인 남관, 주경, 유영국, 손동진, 장석수, 정점식 작가들도 일본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서구 미술문화를 접했다.
이들은 영남지역 오지에서 태어나고, 정착하면서 일제강점기, 해방, 6,25 동란 등 격동의 세월을 감내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서막을 연 작가들이며, 한국현대미술의 선각자이자, 교육자로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지역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남지역은 자연주의 구상작가 1세대 작가들의 활동이 왕성한 곳이었다. 특히 이인성 작가의 출현은 영남지역이 자연주의 구상회화의 아성이라는 명칭을 부르는 동기가 되었으며, 지역에서 추상미술 운동을 펼치기에는 위축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상황을 도래하게 되었다.
그동안 영남지역에 크고 작은 화랑에서 지역출신 근대미술가들을 조명한 전시가 있어 왔다. 전시 작가들은 대부분 자연주의 구상작가들의 작품전으로 일괄해 왔었다.
이것은 한국 화단이 상업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있는 시대적인 분위기와 함께 작가들이 인상파의 아류에 만족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추상미술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향토출신 정점식을 제외한 장석수, 남관의 추상미술 전시가 최근에서야 대구지역에서 조명되어져 왔다는 점은 신 미술의 형성과 작가들이 배출하기에 위축 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남화단을 엿볼 수 있으며 큰 아쉬움으로 남는 사실들이다 .
'영남의 추상미술전'은 한국의근․현대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영남에서 괄목할만한 작가들을 배출하면서도 진작 지역민들은 이러한 지식을 접하기 힘든 그동안 열악한 문화환경을 고려한다면, 포항시립미술관에서 마련되는 이번전시는 공립미술관으로서의 그 역할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영남지역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예술관과, 교육자로서, 지역미술발전을 위한 행정가로서의 걸어온 길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려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지역민들에게 각인시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