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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대반대지가(韓日合邦大反對之家)
  • 권기웅 기자
  • 등록 2012-09-24 10: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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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암 김도화 선생 '이산정(泥山亭)'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 복원
 
한일합방대반대지가(韓日合邦大反對之家)라는 문필로 국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안동의병장 척암 김도화 선생의 유적지 이산정(泥山亭)이 복원된 지난 22일 준공식과 함께 추모학술강연회가 열렸다.

척암 선생 서세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열린 이산정 준공식에는 기관단체장, 광복회원, 청년유도회, 의성김씨 귀미 문중 후손 등 500여명이 참석해 선생의 정신을 기렸다.

특히 추모학술강연회에는 안동대학교 이해영 교수가 '척암 김도화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하고,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은 '척암 김도화의 의병항쟁'이란 주제로, 한동대학교 김윤규 교수는 '척암 김도화의 문학세계'에 대해 강연을 가졌다.

척암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의병활동을 논의했던 이산정은 지난 2010년부터 해체수리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도화(金道和 : 1825生 ~ 1912卒 )선생의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庵),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구와(龜窩) 김굉의 증손이며 김약수(金若洙)의 아들이다.

안동의 일직면 귀미리에서 태어났고 증조부인 김굉은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며 모친 정씨는 입재 정종로(立齋 鄭宗魯)의 손녀이자 손재 남한조(損齋 南漢朝)의 외손녀이다.

퇴계학통의 적전이라 할 이대산의 학통이 손재 남한조로 이어지고 다시 정재 유치명으로 전승 되었는데 척암 김도화는 이러한 가문의 영향으로 25세인 1849년부터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스승이 서거하자 서전(敍傳)을 짓고 기문록(記聞錄)을 작성했다.

68세에는 서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69세인 1893년 유일(遺逸)로 의금부 도사를 제수 받았고, 72세인 1896년에는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여러 차례에 걸쳐 상소문을 올렸는데, 특히 이등박문에게 격고통감문(檄告統監文)을 보냈다.

왕명으로 의병이 해산되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리고 두문불출했으며 당시 영남유림의 태산북두로 추앙을 받았다.

그는 동산 유인식, 오헌 김홍락, 해창 송기식, 경암 백규, 야산 정창조, 석암 홍의흠, 화남 김만조 등을 비롯 400여명의 학자를 배출했다. 조선말 서산 김흥락과 함께 퇴계학통 적전 계승자로서 대표적 양대 맥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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