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척경비가 신라가 비화가야를 복속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닌 단순 ‘무명비’나 일제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한 향토사학자가 발간한 책에서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신라 왕국의 김씨 왕족이 한반도 토착민이 아닌 흉노족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들에 의해 편찬된 신라의 삼국사기는 한반도 선주민의 역사를 말살한 유이민의 기록일 것이란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향토사학자 오석문씨는 2005년 ‘비밀왕국 비화가야’와 2007년 ‘신라진흥왕비 신설’에 이어 올해 9월 ‘비화가야 史(도서출판 경남)’를 편찬했다.
그는 총143쪽에 달하는 저서에서 1960년대까지 창녕읍 석빙고 맞은 편에 경주 첨성대 형태의 석조 건축물이 있었으며, 용도는 해를 관찰하는 첨일대 였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현세 사가들이 비화가야 역사의 말살에 어떤 구실로 말살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해놓았다.
삼국사기 지리지 화왕군조편의 “창녕은 본래 비자화군 또는 비사벌이라고 하는 데 진흥왕 16년(55년)에 주를 설치해 하주라 이름하고 진흥왕 26년(565년)에 폐하였다”는 기록에 대해
오씨는 “이 하주의 속부․군․현은 무엇이고 영역은 어디까지 인지도 아무런 기록이 없고 10년만에 폐지한 것은 역사라고 우겨선 안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일연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비화는 지금 창녕인데 고령을 우려하여 잘못 기록했다’는 것을 창녕군지에서 ‘아마 고령의 잘못인 듯 하다’고 왜곡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반도의 장구한 역사속에 비화가야사가 포함되지 않으면 그것을 고대 한국사라 말 할수 없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며 “신라 편의대로 망상 추측하고 허구의 틀속으로 몰아 사실인양 오도하고 있는 것은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책을 편찬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