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隱 李穡(1328~1396)선생은 고려 말기의 문신, 학자.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으로, 고려 삼은(三隱)중 한 사람이다. 李穡의 본관은 韓山으로 1328년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稼亭 李穀의 외아들로 태어나 1341년 원나라로 유학하여 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性理學을 배웠다. 1351년 귀국하여 시정개혁 건의문을 올리고 이듬해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서장관이 되었으며 1354년 원나라에 가서 會試에 장원하고 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국사원 편수관을 지내고 귀국했다. 이듬해 다시 원나라에 가서 한림원에 등용됐으나 1356년 귀국하여 이부시랑.정당문학.대사성.문하시중 등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性理學의 발전과 교육진흥 등에 큰 공헌을 했다. 유,불.선에 조예가 깊어 유교의 입장에서 삼교를 융합했고, 훗날조선 性理學의 주류를 이룬 권근.이숭인.길재.하륜.정도전.김종직.변계량 등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또한 그의 不事二君의 충절은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문장의 祖宗’ 이란 칭송을 받을 만큼 시인이자 대문호였던 그는 고려 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큰 업적을 남겼다. 牧隱詩藁에 수록된 현존하는 작품은 6,031首로서 양적, 질적으로 그가 詩才, 文才로서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서에 <목은시고>와 <목은문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