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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이 노닌 항아리 속 별천지‘화개동천’
경남편집국
등록 2013-05-13 13: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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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바위
우리나라 화개동은/항아리 속 별천지/선인이 옥 베개를 권하니/몸과 세상이 어느 새 천 년일세//골짜기마다 물소리 우레 같고/봉우리마다 초목은 비에 새로워라/산속에 중은 세월을 잊고서/나뭇잎으로만 봄을 기억하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있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화개동천(花開洞天)’을 노래한 시다. 화개(花開). ‘눈 속에서도 칡꽃(葛花 갈화)이 핀다’해서 ‘화개동천’이라 불리다가 나중에 화개로 바뀌었다.
국내 최대 야생차밭으로 널리 알려진 하동 화개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발원해 대성리, 범왕리 칠불사, 운수리 쌍계사를 거쳐 탑리 화개장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화개천 일대를 포괄하는 지명이다.
‘화개’라는 지명은 쌍계사 창건 설화와 연관이 있다. 723년(신라 성덕왕 22년) 의상(義湘) 제자 삼법이 당에서 귀국해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가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흐른다 해서 쌍계사로 불렸다.
삼법 화상이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시기 위해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그 지명이 화개로 됐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꽃 피는 곳’ 화개동천은 계절마다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른 봄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4월 초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길이 벚꽃터널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고 이어 하얀 배꽃이 벚꽃을 대신한다.
배꽃이 지는 5월 초순에는 화개천변을 따라 ‘수달래’라 불리는 철쭉이 온 산을 뒤덮고, 초겨울에는 수수한 녹차 꽃이 광활한 야생차밭을 수놓아 일 년 내내 꽃이 질 날이 없을 정도다.
화개동천은 또 고운 선생의 화개동시(花開洞詩)처럼 ‘신선이 사는 항아리 속 별천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의 품 같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유리알처럼 맑은 계곡물과 온갖 꽃들, 계절마다 새 옷을 갈아입는 울창한 수림, 그리고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신선이 노닐기에 손색이 없다.
화개는 화개동시 말고도 고운 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세이암(洗耳岩).
신흥리의 의신마을 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을 따라가면 절벽에 이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고운이 세속의 비루한 말을 들은 귀를 여기서 씻고 신선이 돼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요순시대 허유(許由)가 ‘천하를 물려주겠다’는 요임금의 말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라는 물에 귀를 씻었다는 고사와 흡사하다.
세이암과 더불어 의신마을에서 상류 쪽 1㎞ 지점의 화개천에는 집채보다 큰 바위가 수령 50∼60년 된 소나무 세 그루가 머리에 인 채 버티고 서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2층짜리 집 크기만한 이 바위는 위용이 웅대하고 늠름해 6·25 때 잠시 ‘김일성 바위’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맑고 묵묵하게 서 있다’고 해서 ‘명묵바위’라 부른다.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씨앗 몇 톨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세 그루의 소나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빗물에 의지하며 고고한 기품을 잃지 않아 자연의 위대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엿보게 한다.
명묵바위 주변에는 요즘 만개한 철쭉과 육중한 기암괴석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에 짙은 신록이 더해져 선경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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