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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청각 앞 회화나무 새 생명 탄생을 축하하며.. - 한낱 나무라는 생각 버리고 역사의 한 부산물로 지키고 가꿔야
  • 기사등록 2009-06-24 18: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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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사람으로서 안동댐 진입로의 회화나무, 일명 귀신나무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르신들에서부터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이 회화나무와 나무에 얽힌 사연은 구구절절이 많다.
 
도로 한 복판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교통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잘라야 한다는 여론에 손을 데다가 피를 토하고 죽어 넘어졌다는 둥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둥 억측이 난무하자 나무를 자르는 사람에게 상금까지 내 걸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돌게 했다.

회화나무라 함은 콩과 식물로서 키는 25m에 달하며 황백색의 꽃은 8월에 꼭대기에서 길이 15~30㎝의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은 괴화(槐花), 열매는 괴실(槐實)이라 하여 약용으로 쓰이고, 목재는 빛깔에 따라 백괴(白槐)·두청괴(豆靑槐)·흑괴(黑槐)로 나눈다. 인천 신현동의 회화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15호로, 당진군 삼월리 제317호, 경주시 육통리 제318호, 함양군 영동리의 회화나무가 제3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크고 멋스러운 풍채 덕에 정자나무로 적격이라 하여 흔히 마을 입구에 심었다.(인터넷 참조)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상서러운 나무라 하여 유서 깊은 서원이나 명문 가문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양반집 선비들을 위한 학자나무라고도 하는데 옛날 양반이 이사를 갈 때에는 쉬나무와 회화나무 종자는 반드시 챙겨갔다고 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집 앞에 심으면 손님이 들끓게 되고 공부하는 사람의 집 앞에 심으면 문리가 밝아지게 된다고 했고. 가문이 번창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문 앞에 회화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수령이 300년이나 되는 이 회화나무가 지난 지난해 8월 밑동만 남겨 놓은 채 댕강 잘리는 괴 사건이 발생해 그로 인한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고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잘려진 회화나무와 장소는 원래 우리지역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을 배출해낸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의 소유이고 임청각의 앞마당 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일제에 의해 철도가 놓이게 되자 임청각과 분리가 되었다.

사건이 발행하고 각 언론매체를 통해 소식이 전해지자 의견은 양분되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그동안 교통에 방해만 되고 거치적거렸는데 이참에 완전히 제거를 하자”는 의견과 “안동의 역사와 안동댐의 건설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임청각을 수호하던 300년 이상의 나무도 우리네 안동의 문화이다. 살려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말이다.

필자는 나무가 잘려진 당시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았으며, 유달리 꽃과 식물을 좋아하시는 필자의 어머님께서도 “쯧쯧!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일진데 누가 저다지도 잔인한 행동을 했을꼬?” 하시며 이튿날 손수 흰 국화꽃을 놓아두고 오시는 길에 회화나무는 상스러운 나무이고 300백년 세월동안 벼락만도 엄청 맞았다며 도로 노견에 나뒹구는 나무의 파편들을 주워 와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신 적이 있어 지금도 필자는 그 나무잔해를 일부 간직하고 있다.

각설하고 며칠 전 찾아 본 회화나무는 잘려진 밑동에서 여린 새 가지와 이파리들이 살아 올라와 질긴 생명력의 신비를 보여 주고 있었기에 신기한 나머지 한참을 지켜보고 왔다.

비교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300살 난 할머니가 새 생명을 잉태한 것이다. 노산도 이런 노산이 없다.

일부 비판론자들에겐 욕먹을 일이 분명하나 안동시민 모두가, 그리고 출향인 모두가 축하해야 할 일임이 자명한 사실이며, 살아있는 나무라는 점도 간과 할 수 없지만 역사라는 것은 종이쪽 한 장 지키고 보존해야함에 무려 300살이나 된 안동의 상징이라면 상징이랄 수도 있는 회화나무가 다시금 태동을 한다는데 축하하고 박수를 쳐야 할 것이다.

안동시의 미래를 한낱 나무에 의미부여 한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놓고 다시금 안동의 미래를 내다보며 이 회화나무는 가꾸어져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백년의 주춧돌을 놓아가는 안동이 인재를 키우고 준바하는 정성과 바람과 마음으로 여린 새순이 둥치만큼 커졌을 때 오늘은 그때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 FMTV 칼럼리스트 燁記書生 김태균 취재부장 -

본 기사문은 개인적인 思念이 담겨있는 칼럼글 이므로 본 FMTV의 理念과 견해를 달리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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