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오천년 역사의 도도한 물결, 낙동강!
태백 황지에서 발원하여 600리를 굽이쳐 흐른 낙강(洛江)과 영양 일월산을 감아 돌아 흘러 온 동강(東江)이 안동시내 한가운데서 만나 도도한 물길을 이룬 낙동강(洛東江)은 우리 민족의 젖줄이자 정신문화의 요람이다.
강은 물길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흐르고, 문화가 흐르고, 우리네 삶이 흐른다. 따라서 강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흐르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굽이굽이 휘감아 돌며 물길도 쉬어가는 곳, 하회마을. 그곳에는 우리 민족의 끈적끈적한 삶이 켜켜이 쌓여 문화를 만들고, 올곧은 선비정신을 잉태했으며, 아름답고 애절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계유산 하회마을의 킬러콘텐츠인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이제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안동의 문화자산이며, 세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 된 안동문화의 최첨병이다.
“산을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는 천혜의 절경”을 배경으로 하회사람들은 신과 인간이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꿈꿨다.
그들은 별신굿을 펼치는 신성한 시공간만큼이라도 하회별신굿이라는 문화장치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성적 구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양반과 상민으로 신분을 가리지 않는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펼쳤으며,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추구한 하나 되는 세상’을 염원했다.
이러한 가치와 이념은 오늘날까지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물길과 함께 하회마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듯 하회마을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정신문화와 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는 다양한 생활문화, 그리고 하회를 품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은 “살아 있는 유산적 가치”로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길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세계 유산적 가치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유산 하회마을의 가치를 드러내고 방문객들에게 하회마을이 지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함께하는 것 보다 더 좋은 아이템은 없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급증하고,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관람에 대한 관광객들의 기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공연 일정에 대해 불만을 가진 민원이 많이 제기 되었지만 안동시(시장 권영세)의 적극적인 대처와 재정적 뒷받침으로 상설공연이 확대편성 되면서 민원을 다소나마 해소한 것은 하회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97년 첫 상설공연 때만해도 토, 일요일에 만 편성되었던 공연이 지금은 수, 금, 토, 일요일까지 주 4회로 확대 편성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4대강 개발사업으로 시민들 곁으로 다가 온 낙동강변 음악분수광장에서 7월과 8월 매주 토요일 1회 공연을 가짐으로써 환상적인 음악분수쇼와 하나로 어우러지는 탈춤공연을 통해 지독하게도 무더웠던 올여름에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화령장 전투 전사
개요
◦ 전투기간 : 1950.7.17 ~ 7. 21
◦ 전투지역 :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장
◦ 참가부대 : 국군(보병 제17연대), 적군(보병 15사단)
경 과
‘50. 6. 25일 불법 기습남침 이후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은 국군의 방어선을 와해시키기 위해 적 15사단을 대구방향으로 긴급 투입하였다. 이는 대구⇨부산까지 신속히 진격하여 남한을 조기에 점령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북한의 주력부대 1개사단을 투입한 것이다.
북한의 의도를 알아차린 우리 국군은 북한군 15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17연대를 상주 북방으로 투입하였다.
화령장에 도착한 17연대 1대대는 주민신고를 받고 정찰을 하던 중 북한군 전령을 생포하고 적 15사단 48연대 이동에 대한 첩보를 획득하여 매복 기습작전을 준비하였다.
지금의 송계분교 일대에서 도착한 적 48연대가 낮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는 등 전장군기가 문란한 것을 확인한 대대장은 경계도 없이 식사를 위해 집결한 북한군 48연대를 기습공격하여 국군의 피해는 없이 적 1개 연대를 전멸시켰다.
다음날 2대대가 정찰하던 중 북한군 전령을 생포하여 적 15사단 45연대가 후속하고 있다는 첩보를 획득하였다. 이에 따라 2대대가 동관리 계곡 일대에서 매복을 하였고, 적이 바로 눈앞에 올 때까지 철저하게 사격군기를 유지한 가운데 완벽한 매복작전을 펼쳐 적의 보급중대와 45연대를 잇달아 격멸시켰다.
결과 및 평가
5일간의 전투로 북한군 1개 사단이 격멸되었지만, 아군 전사자는 4명에 불과하였다. 당시 전투를 지켜본 美 군사고문관 스카레기 소령은 “1‧2차 세계대전을 다 겪어보았지만 이처럼 통쾌한 전투는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군은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수적으로나 화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아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리한 계곡지형을 잘 이용하였고, 무엇보다 적이 눈앞에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도 지휘관의 사격통제에 따르며 철저하게 전장군기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화령장 전투의 승리는 민관군이 힘을 합쳐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북한군의 이동을 신고한 노인, 북한군에 대한 첩보를 제공해준 경찰, 연일 계속된 전투에 지친 장병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준 마을 주민,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주변정찰에 직접 동행하며 도움을 주었던 청년, 이들 모두가 화령장 전투 승리의 주역들이었다.
아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17연대 전 장병은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