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눈이 될께요"
  • 권기웅 기자
  • 등록 2011-12-28 11:39:33
기사수정
  • 안동시보건소 이정미 간호사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 미담수기 공모전 최우수
 
안동시보건소가 2011년도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시행한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 미담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 미담수기로 2편이 선정돼 지난 22일 장관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미담수기 공모전은 지난달 30일 전국 253개 보건소를 대상으로 시행됐으며, 평소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수행하는 방문간호 인력들이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한 감동적인 미담사례와 사업홍보 등이 주제가 됐다.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 공모전에서 최우수로 당선된 안동시보건소 2편의 수기 중 이정미(여 27) 간호사의 '눈이 될께요'는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는 금슬 좋은 노부부에 대한 가슴 저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눈이 될께요> 안동시보건소 이정미 간호사 作
 
두 분은 부부 사이의 정이 유독 남달랐다.
옛날 어르신들, 더욱이 경상도 어르신들은 대부분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못한데 반해 이 노부부는 서로를 알뜰히 챙겨주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인상적이었다.

금슬이 좋아서인지 노부부는 당뇨까지 서로 닮아있었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당뇨합병증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는 언제나 손을 잡고 동행했다. 길을 걸을 때는 할아버지의 눈을 의지하며, 전화를 받을 때는 할머니의 귀를 의지하며 생활하셨고 비록 생활은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듯 느껴졌다.

하루는 노부부 댁에 방문을 했다.
귀가 어두워 입모양을 크게 해서 천천히 말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던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요즘 헛소리를 많이 하신다며 걱정된다고 하셨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매 선별검사를 했다.
"어르신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가? 병원인가? 어딘가?"
"어르신 오늘이 무슨 요일 인가요?"
"나 오줌 마려워!"

역시 예상대로 평소 할아버지와 다르게 뭔가 이상했다. 치매 선별검사 점수 합산 결과 인지저하가 나왔고 보건소에서 종합병원과 연계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하고 나서 할아버지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할머니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노부부가 함께 생활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보호자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께 보호자의 연락처를 물었고 나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사실은 할아버지랑 내가 자식들이랑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우리는 젊어서 혼자가 되었는데 서로 과부 홀아비로 살다가 나이 들어서 만났어."
"근데 자식들의 반대가 무지 심했어."
"할아버지가 돈이 조금 있었는데 자식들이 내가 할아버지 돈보고 만나는 줄 알고 심하게 반대하다가 결국은 인연을 끊어서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흐느끼셨다. 안쓰럽게 느껴졌다.

항상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을 봤더라면 냉정하게 마음을 돌리기보다는 따뜻하게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치매를 진단받은 후 할아버지는 당뇨조절도 잘 되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러나 갑갑한 병원생활을 견디지 못해 입원, 퇴원을 반복 하시다가 결국 당뇨 합병증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혼수상태 중에도 "우리 할멈 어디 있어? 우리 할멈 나 없으면 안되는데···"하시며 할머니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다시 방문을 했다.
"할머니 계세요?"
"간호사야? 문 열렸어. 나 안보여서 못나가니까 어여 들어와."
항상 웃으며 따뜻하게 반겨주시던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물건들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한 채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계셨다.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입맛이 없어. 그리고 앞이 보여야 말이지.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항상 챙겨줬었는데···"

주변을 보니 할머니는 당뇨약 복용을 하지 않아 약이 가득 쌓여 있었고 당뇨 수치도 많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요즘은 인슐린 주사도 안 맞아. 나도 그냥 할아버지 따라가고 싶어."

할머니가 우울증 증상도 보이는 것 같았다. 할머니를 이대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청과 연계하여 가사도우미 및 반찬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가사도우미는 운이 좋게도 할머니 집 근처에 사시는 분이셨다. 나도 당뇨로 케이스를 잡고 할머니에게 집중 관리를 시작했고 집중 관리 기간 동안 정서적 지지와 함께 가사도우미에게 인슐린 주사 놓는 법을 교육 시켜 집중 관리가 종료 되고 난 뒤에도 인슐린 및 투약이행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눈이 어두워 항상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를 위해 비록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바깥바람이라도 쐬고 다른 어르신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 보건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휠체어에 의지해 나들이도 다니게 해드렸다. 어느 샌가 할머니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번지고 마음의 치유가 조금씩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집중 관리가 끝난 몇 달 후 할머니 댁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반겨주셨다. "아이고 우리 딸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왜 이제 왔어"
할머니는 나를 딸처럼 반겨주시며 딸이 없으니 우리 딸을 하자고 하신다.
"할머니 요즘은 할아버지 생각 안나세요?"
"나지, 근데 내가 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요즘은 자꾸 꿈에 나타나."
"하루는 자다가 부스스 눈을 떴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지 뭐야?"
"그래서 내가 영감 추운데 그러고 있지 말고 여기 와서 누우라고 하니까 영감이 웃더니 사라졌어. 그래도 내가 보고 싶어 하는걸 또 어떻게 알고 영감이 이렇게 가끔씩 나타나주니 나야 참 고맙지."

두 분의 정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기도 해 기분이 오묘했다. 그날 할머니 댁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생각했다. 할아버지와의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나에게 즐겁게 이야기 해주시던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를 그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내가 할머니의 눈이 되어 드려야겠다고.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이란?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은 지역 내 취약계층 5,400여 가구를 등록 관리해 취약계층 개개인의 건강문제를 파악, 대상자별로 단계적 간호계획을 세워 가정방문을 통해 직접간호서비스제공, 건강정보제공, 건강행태개선, 만성질환 및 합병증 예방, 노인의 허약예방서비스, 산모, 신생아, 영유아관리, 기초재활서비스, 다문화가족관리와 보건 및 복지서비스 연계, 건강교육 등을 시행하는 것이다.
0
FMTV영상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기획특집더보기
주간포커스더보기